
[달인에게 배운다] 국내 유일 ''''마스터 블렌더'''' 한경대 이종기 교수 "국내 첫 36.5도 위스키, 3년 공들인 결과물"
"어른들은 술을 무슨 맛으로 먹죠?" 중3 여학생이 네이버에 물었다. 첫째, 어른이라고 다 술맛을 알고 먹진 않는다. 둘째, 그렇다면 술의 맛은 무엇이냐. 한경대(경기도 안성시 소재) 생명공학과 이종기(55) 교수는 말한다. "술의 향미는 향과 맛, 그리고 여운(뒤끝, 후미)으로 표현합니다. 그러니까 향과 맛과 감촉의 통합적인 느낌을 ''''술의 맛''''이라 할 수 있겠죠. 어느 향이 돌출되지 않고 조화를 이루는 향기, 깊은 숙성미, 부드러운 목넘김이 중요합니다." 국내 판매량 1위 위스키 ''''윈저''''의 개발자, 국내 유일의 마스터 블렌더(위스키 제조 책임자)의 답변이니 믿어도 좋다.
이 교수의 최근 작품은 부산의 ㈜수석밀레니엄(옛 천년약속)이 지난해 말 출시한 36.5도 위스키 ''''골든블루''''. 반년도 안 돼 부산 시장점유율 5%를 넘길 만큼 반응이 좋다. 한국인의 입맛에 맞춘 원료 혼합비율(블렌딩 레시피)을 얻기까지 3년이 걸렸는데, 이때 블렌더의 미각과 후각이 절대적이다. 2003년 MBC에서 스무 가지 향기 샘플 테스트를 만점으로 통과했고, 1997년 SBS에서는 달팽이 요리를 먹어만 보고도 재료 스무 가지를 다 맞췄다니 마스터 블렌더라는 호칭의 무게를 짐작할 수 있다. 평소에 담배나 자극적인 음식을 멀리 하는 건 물론이다.
''''윈저'''' 탄생시킨 위스키 제조 명장 부산 양주 ''''골든블루'''' 개발 맡아
주류회사 거치며 술문화 관심 술문화 박물관 ''''리쿼리움'''' 세워
''''마스터''''도 첫 경험은 여느 사람과 다르지 않았다. "대학 본고사를 치르고 동기생, 고교 선배들과 막걸리집에서 인사불성이 되도록 마신 게 술에 대한 첫 기억입니다. 대학 생활 내내 막걸리 독에 빠져 살았는데, 남자라면 권하는 잔은 다 비우는 게 주도의 기본라고 착각했죠." 서울대 농화학과를 졸업하고 동양맥주에 입사해서 만난 서양인들의 음주 문화는 달랐다. "자기가 술의 종류나 주량을 선택하고 술에 취해 실수를 하는 것을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전통 주도와 술 문화에 대한 관심은 영국 헤리옷-와트 대학원 유학과 두산 씨그램, 디아지오 코리아 등 주류회사 근무 시절까지 이어졌다. "술은 인류가 즐겁게 살기 위한 필수품인데, 잘 알고 마시면 인생이 풍요로워지고 잘못 마시면 인생이 망가집니다." 2005년 충주 탄금호 공원에 오랫동안 계획하던 세계 술 문화 박물관 ''''리쿼리움''''을 세운 것도 음주 문화와 교육에 대한 사명감 때문이었다.
지금 그가 몰두하고 있는 또 하나의 화두는 우리나라 명주 개발이다. 문경 오미자로 만드는 명품 와인은 3년간 연구를 거쳐 올해 말 제품 출시를 앞두고 있다. 강원도 태백의 감자와 옥수수를 이용한 태백청정고원 맥주와 블루베리 와인도 연구 개발을 마쳤다. 각 지역의 품질 높은 특산물로 곡주나 전통주를 개발해 우리 농산물 소비를 증진하고 나아가 그 지역의 문화 콘텐츠로 만드는 것이 그가 꿈꾸는 구상이다.
마지막으로 그가 생각하는 ''''술의 달인''''은 어떤 사람인지 물었다. "고향 친구와 옛이야기를 나누듯 오래 전에 느낀 술의 향기와 맛을 추억과 함께 떠올리면서 지인들과 함께 인생을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닐까요?" 이것이 어른들이 아는 ''''술의 맛''''일 것이다.
최혜규 기자 iwill@busan.com 부산일보|31면|2010-0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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