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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0-01-10 00:00
중앙일보 보도자료
 글쓴이 : 리쿼리움
조회 : 10,298  

“일제가 망친 전통 술과 음주 문화 되살려야죠"
이경희 기자의 수집가 이야기 - 리쿼리움 이종기 관장
이경희 dungle@joongang.co.kr, 사진 신인섭 기자 | 제146호 | 20091226 입력

충주 탄금호 자락에 운치 있게 자리한 세계 술 박물관 리쿼리움. 단지 술이라는 이유만으로도 가점을 줄 만했다. 지금까지 만나온 어느 수집 아이템보다 더 유혹적이니까. 술에 미쳐 박물관까지 차릴 정도의 사람이라면 혈중 알코올 농도를 늘 일정한 수준으로 유지하며 취해도 맨 정신인 듯, 깨고도 취한 듯하지 않을까. 이종기(55) 관장은 그러나 그런 기대를 여지없이 무너뜨렸다. 그는 전시해둔 『국조오례의』와 『향음주례』를 가리키며 “술은 함부로 덜컥 마시는 게 아니다”는 걸 강조했다.

“어르신을 대접할 땐 신을 신고 마당으로 내려가 우물에서 물을 길어 잔을 씻고 수건으로 닦은 뒤 두 손으로 받쳐 올립니다. ‘제가 평소 존경하는 아무개 어른께 한 잔 드리니 받으소서’라고 하면 ‘제가 덕이 부족한데 어찌 받겠습니까’라며 물리치는 과정을 세 번 주고받도록 되어 있습니다. 옛날엔 먹을 것도 없었을 테니 술이 얼마나 귀했겠습니까. 일제가 이 정신을 다 부숴놨어요. 일제가 을사늑약을 맺은 뒤 제일 먼저 내린 조치가 주세령이었습니다. 제사 때 빚는 술마저 불법화했죠. 그걸 그대로 이어받은 게 주세법이고요. 정작 일본은 술이 각 지방의 대표 특산품으로서 지역 경제와 농업을 발전시키는데 말이죠. 우리나라 주류의 0.2%만 국산 농산물로 만들어요. 그게 10% 선으로만 올라도 쌀 문제는 해결되지요. 전통주 산업을 육성하는 건 문화 주권을 되찾는 일이기도 하고요.”

그는 전통 명주와 품위 있는 술 문화를 되살리기 위해 박물관을 열었다. 그런데 그는 전통주가 아니라 위스키 전문가다. 위스키를 만들기 위해 30년간 하루도 빠짐없이 술을 마신 사람이었다. 1980년 OB맥주에 입사하면서 술의 품질 검사를 위해 매일 석 잔을 시음하는 임무부터 시작했다. 81년부터 OB씨그램에서 위스키를 연구했다. 80년대 초반 위스키 3사(베리나인, 진로 위스키, OB씨그램)는 위스키 원액 국산화에 뛰어들었다. 썸싱스페셜·패스포트 등이 그때 나온 국산 위스키다. 그는 그 시기에 위스키 제조법을 체계적으로 배웠다.

이후 국산 원액 사업은 경제성이 떨어져 5~6년 만에 중단됐고, 주류회사가 다국적기업이 되어버리면서 더 이상 한국인 전문가를 기르지 않았다. 이 때문에 그는 우리나라에서 유일한 ‘마스트 블렌더(제조 책임자)’다. 그가 주도해 개발한 술이 ‘윈저’와 ‘골든 블루’다. 어느 TV 프로그램에 섭외돼 음식에 들어간 재료 20가지를 냄새로만 다 맞힌 적도 있을 만큼 그는 공인된 후각의 소유자다. 그러나 달인의 경지에 오르기 전, 위기가 찾아온 적이 있었단다.

“직장생활 7~8년 만에 슬럼프에 빠졌어요. 의대에 편입할까 고민했죠.”
그때 읽은 책이 『드링크』였다. 뉴욕 타임스 기자가 쓴 미국 금주령 시대의 이야기다.
“금주령이 내려진 뒤 오히려 폭력이 난무하고 밀주를 유통시키던 갱단이 활개 치고, 마약이 창궐했답니다. 술은 윤활유로서 꼭 필요하지만 건전하게 마시도록 교육해야 한다는 교훈을 담은 책이죠. 거기에 감명받았어요. 누가 됐든 만들어야 할 술이라면 좋은 술을 만들자고. 그리고 문화운동을 펼치리라 마음먹었어요.”

그때부터 술 관련 유물들을 하나씩 수집했다. 일 때문에 연결된 전 세계의 와이너리와 술공장에서 마음에 드는 유물을 찍어두곤 “박물관을 할 테니 매물로 나오면 연락해 달라”고 신신당부하곤 했다. 기술자가 입으로 불어 만든 초기 유리 술병은 지금도 눈에 띌 때마다 사들인다. 품질이 좋은 건 아니지만 사람의 손으로 빚은 것이라 단 하나도 모양이 같은 게 없어서다. 고대 이집트의 와인 용기인 암포라, 와이너리에서 쓰던 대형 증류기까지 박물관에 전시된 것만 4000여 점. 수장고에 있는 것까지 합하면 몇 점이 되는지 그도 알지 못한다. 2005년 박물관을 열고, 2007년 영남대 식품공학과 양조학 교수로 자리를 옮겼다. 그러곤 전통주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막걸리가 세계화되려면 일단 한국의 젊은이들에게 어필할 수 있어야 해요. 쌀로 만드는 맥주처럼 가야 하지 않나 생각해요. 기술적으로 풀어야 할 과제가 많죠.”
쌀의 혼탁한 성분이 가라앉지 않고 골고루 섞이게 하는 것, 균질한 맛을 유지하는 것, 유통기한이 최소 1년은 가도록 만드는 것 등 넘어야 할 산이 많단다.

“위스키를 만들던 사람이 웬 전통주냐고요? 제일 만들기 어려운 술이 맥주를 증류시켜 만드는 위스키입니다. 그걸 만들 줄 알면 못할 게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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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10년차 기자다. 그중 5년은 문화부에서 가요·방송·문학 등을 맡아 종횡무진 달렸다. 사람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